‘책과 함께 부산을 걷다’, ‘100인 100색의 선물’을 잇는 ‘꿈꾸는 독서 아카데미’ 세 번째 만남이다. 내가 이번 만남을 이끌어 갈 멘토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먼저 서로가 편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하지만 몸이 조금 불편하다 보니 내 불편함을 만나는 이가 불편할까 봐 내심 조바심이 인다. 그래서 상대가 불편함을 느끼게 되면 그 순간부터 빨리 자리를 벗어나야겠다는 모자란 생각을 하곤 한다. 극복해야 할 부분인데 작아진 가슴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망설이게 한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상대에게 편안한 사람으로 다가서야 하는 것은 업무이든 인간관계든 필수조건일 터인데 안타깝다.
누군가 날 사랑하게 하려면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서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사랑은 구현될 테니까. 누군가에게 미소를 짓는다는 것은 사랑을 선물로 주는 것이다. 아이의 미소를 떠올려 보면 그 미소는 기쁨의 선물이다. 사람들과 미소 띤 얼굴로 눈 마주하고 이야기 나누면 행복이 솟아난다. 상대방의 눈을 바라본다는 것은 사랑의 미소이며 진실의 미소이다. 상대에게 온화한 미소를 보이고 반응을 보거나 내가 그의 눈에 비치는 이유는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잘 사는 것은 자세히 보는 것이라 하였다. 자세히 보고 새로운 면 찾아내는 게 사랑이다. 상대방으로부터 편안한 마음을 지닐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다정다감한 말투, 친절한 예의 등을 고루 갖추고 상대를 대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미소일 것이다. 불경에 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보시를 ‘무재칠시’라 하는데, 그 첫째가 남에게 부드럽고 온화한 얼굴을 보여 주는 것으로 ‘화안시’라 하며 둘째가 고운 눈매로 남과의 시선을 나누는 것을 ‘안시’라 하여 최고로 쳤다. 또한, 데일 카네기는
“웃음은 별로 소비되는 것은 없으나 건설하는 것은 많으며, 주는 사람에게는 해롭지 않으나 받는 사람에게는 넘치고, 짧은 인생에서 생겨나 그 기억은 길이 남으며, 웃음이 없이 참으로 부자가 된 사람도 없고, 웃음을 가지고 정말 가난한 사람도 없다. 웃음은 가정에 행복을 더하며, 사업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며, 친구 사이를 더욱 가깝게 하고, 피곤한 자에게 휴식이 되며, 실망한 자에게는 소망도 되고, 인간의 모든 독을 제거하는 해독제다.”
라 하였다. 그래서 난 잘 웃는다. 그것도 눈부터 동그랗게 웃는다. 그래서 바람둥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살았다. 이도 부모가 준 선물이니 장점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여, 이번 만남도 함께하는 이들에게 동그란 눈웃음을 보내며 시작하였다. 모두가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강의는 일방적인 듯해도 숨은 쌍방향 성을 지닌다. 서로의 기운이 오가야 좋은 시간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책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기에 지금껏 살아오며 의미를 갖게 된 책 토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책은 시간을 선물한다. 내가 가 보지 못한 세상, 경험 못 한 과거를 경험하게 해 주니까. 이를 통해 비워진 지혜의 웅덩이를 가득 채울 수 있다. 얼마 전 독서축제에 참여해 준 김진명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인생에서 누군가를 만나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됨은 큰 기쁨이다. 이것이 책이라면 더할 나위 있겠는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 누구도 진짜 스승이 될 수 없다. 오직 책만이 스승이 되고 책 안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지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또 외연의 힘이 얼마나 빈약한 것인지 우리 내연의 힘이야말로 진정 키워야 하는 유일한 가치라는 것을 알게 해 주는 지혜의 보고이다.”
그가 지닌 독서에 관한 철학을 나누고 싶었다. 그의 처절하고 치열한 독서가 그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끌었음은 만고의 진리다. 자신의 분야에서 남보다 뛰어난 성과를 보여준 사람은 어김없이 독서광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쓴 책에는 30여 년의 삶의 비결이 담긴다. 책이 지닌 힘이다. 또한, 성공회대 김민웅 교수는
“책은 비밀의 화원이다. 그 안에 들어가면 생각지도 않은 것을 새로이 만나게 된다. 예상 못 한 예기치 않은 것들을 보고 만나게 된다. 책은 그래서 언제나 예상을 압도하는 힘을 지닌다. 펼치면 우리 인생에 새로운 충격과 기쁨을 만난다. 책을 덮고 사는, 비밀의 화원에 무지한 인생을 선택할 것인가?”
라고 물으며 책에 대해 정의 내린다. 지금까지 남다르게 많은 책을 읽었다. 책이 주는 위안으로 다시 삶을 시작했으며 그를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하였고 독서 통해 얻어가진 문학적 소양으로 내 고뇌와 극복을 사색 통해 다듬어 서점 매대에 올려놓았다.
몇 년 전에 ‘책과 함께 부산을 걷다’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을 때, 강사로부터 책과의 첫 만남이 어떻게 기억되어 있는지를 질문받았다. 60~70년대를 시골에서 나고 살았던 사람에게 있어 책에 대한 첫 기억은 퍽 생소했지만, 그것이 첫 만남인지조차 어렴풋하지만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띠 동갑인 맏형은 문학청년이었다. 시골이었지만 허름한 책꽂이엔 적잖은 책이 있었다. 초등학생에겐 버거운 것이 태반이었다. 가끔은 여고생 누나가 책을 빌리러 오는 모습에 왠지 큰형이 멋져 보였다. 그즈음에 정기적으로 배달되는 책이 있었는데, 하얀 표지의 ‘현대문학’이라는 책자였다. 새 책 냄새가 좋았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큰 형이 멋져 보였다. 어느 날 형이
“우리 경만이 신문에 나왔네.”
하며 일간 신문을 내 앞에 펼쳐 보였다. 졸지에 난 어엿한 시인이 되어 있었다. 난 큰형을 부러워하며 어렴풋이나마 문학의 희열을 맛보았다. 이것이 책에 대한, 문학에 대한 첫 경험인 셈이다. 그러나 커지며 그 희열은 점차 사그라져 기억마저 희미해 갔다. 많은 세월이 흘러 공학도의 길을 걸었고 거기에 걸맞게 살았다. 사랑하는 이와 열애를 하여 결혼을 하였고 첫 아이를 만나 행복하였다. 그러나 그 기간은 짧았고 우리에게 시련이 닥쳤다. 업무 중 과로로 느닷없이 쓰러져 장애인이 되어 버렸다. 하루아침에 닥친 시련 앞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떠한 위로도 생명의 끈을 잡게 할 수 없었다. 고통과 좌절의 시간을 보내던 나에게 지인이 건네준 책 한 권이 삶의 끈을 이어갈 용기를 주었다면 거짓일까. 고담준론을 논하는 위대한 사상서도, 삶의 지혜를 논하는 고전도 아니었다. 그다지 두껍지도 않은 수기 모음집이었다. ‘적극적인 삶이 가져다준 선물’
이 안에는 극도의 장애를 극복한 이들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들도 살고 있었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두 다리를 잃고서도, 전신에 화상을 입고서 짓무른 몸을 하고서도, 두 눈을 잃고 암흑의 세계를 살아도 그리고…….
온갖 형태의 일그러짐으로 그들은 살아가고 있었다. 삶이 불행하다고 흐느끼는 이에게 장애는 단지 불편할 뿐이라며, 불행하진 않다고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인간은 극히 이기적이다. 자신보다 못한 처지의 이들을 통해 위안을 느끼니 말이다. 그래서 이 한 권의 책은 위로였고 평화였으며 무엇보다 자유였다. 내 정신을 옥죄고 가슴을 자꾸 작게만 하던 부자유한 육체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서서히 세상과 어울리게 해 준 고마운 존재였다. 무수히 떠 있는 하늘의 별이었다. 별이 하늘에서 반짝이는 이유가 이와 다를 바 있겠는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세상과 소통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세상과 삶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다시 일어나 걸었다. 한참이 지난 후, 감사하는 마음으로 펜을 잡았다. 삶을, 고뇌를, 극복을 써 내려갔다. 내게 용기를 준 그 책 ‘적극적인 삶이 가져다준 선물’ 속에 몇 년 후 내 삶이 담겼다. 나에게 힘을 준 것처럼 오늘도 좌절과 시련을 겪은 누군가를 위로하리라 생각하며 미소 지어 본다.
수필집을 읽는다는 것은 남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보는 일이다. 여러 수필을 읽으면서 수필을 써야겠다고 결정했다. 수필은 기본적으로 허구가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진솔한 삶의 이야기, 어쩐지 부끄럽고 부족한 내 삶의 이야기가 수필에는 있다. 수필집을 읽다 보면 그래서 저자와도 금세 친한 친구가 된 듯한, 또는 저자를 오래전부터 알아온 듯한 기분이 든다. 우리 모든 일상이 감동이고 멋일 수 없다. 따라서 수필은 때로 소소한 이야기일 수 있다. 소재가 ‘삶’으로 좁혀질 때, 수필은 아무래도 서민문학과 가깝다. 언어와 삶에 대한 고뇌와 탐구가 수필의 본령일 터라 장르를 수필로 선택했다. 읽고 사유한 것을 쓰다 보니 글쓰기에 용기를 얻게 되었다. 글쓰기는 나를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깊숙이 하면서. 자연을 찾아 물었고 사람들에게 비추어 사유하였다. ‘쓰려면 그 10배를 읽어야 한다, 그게 글쓰기 윤리다.’ 라는 말을 진리로 받아들여 책 읽는 시간을 더 늘렸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많이 읽고 자세히 보고 깊이 회상하고 많이 사유하여 이를 그 무엇과 관계하여 정리하는 것이라는 지혜를 얻어 가졌기에 이를 실천하였다. 이것이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그 결과물이 얼마 전 출간한 수필집 ‘그래도 동그랗게 웃기’이다. 살아가며 경험하는 여행, 문학, 고향, 친구, 부모, 선물, 자연 그리고 더불어 삶 등을 담았다. 아직 여물지 못하지만, 고뇌와 삶에 대한 철학과 관조가 담겨 있기에 내 책을 사랑한다.
지인들이 어찌하면 글을 쓸 수 있는지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책 읽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답한다. 그리고 사유가 깊어야 한다는 것도. 정리를 잘하면 새로운 것 창조할 가능성이 높기에 그러하다. 읽고 생각하고 메모하고…….
무엇을 좋아하면 잘하게 되고 사회에서 자기 몫이 생긴다. 좋아하면 자세히 보게 되고 자세히 알게 됨은 진실이다. 그러기에 책 읽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최우선이다. 이들을 자세히 보고 알아가는 것 통해 얻은 지혜를 토대로 글을 써야 한다. 생각만으로 끝내지 않고 글로 행동하는 소수가 되기를 바라게 된다. 그들이 세상을 움직여 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었던 책이 늘 곁에 두고 자주 꺼내 보는, 시대의 양심을 대표하는 신영복 교수의 ‘나무야 나무야’이다. 얇지만 비중 있는 책이며 어렵지만 좋은 책이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도 받고 스무 번의 겨울을 감옥에서 보내고 88년 8.15특사로 출소한 그가 단절의 공간에서 벗어나 독보권을 얻고서 국토 곳곳에 서려 있는 역사의 흔적을 더듬고 현재 삶을 돌아보는 사색을 정리한 서간체 수필집. 독보권은 자유이고 권리이기에 자신을 찾는 일일 것입니다. 필자 또한 반쪽의 독보권이나마 회복한 후에 만난 책이라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었다. 저자는 이 책 통해, 역사 속 인물들 삶 통해 올바른 사회인식을 하게 한다. 밀양 얼음골부터 강물의 끝과 바다가 이어지는 철산리까지 가서 사람이 살아가며 깨우쳐야 할 절대 진리를 깊은 사유 통해 전한다. 이 책에, 그에게 반하였다. 이 저작을 읽고서 혼자 중얼거렸다. 이것이 진정한 글이구나…….
깊은 사색에서 오는 문명 비평 통해 차가운 이성의 멋과 맛을 경험한 것이다. 그의 사색을 안 받침 하는 화두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믿음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시대의 지혜를 찾는 사람 그리고 역사의 진리를 맛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이 책은 역사의 맥을 자연의 숨소리로 적어간 나무의 글이기에 그러하다. 그가 자주 강조하는 ‘거울에 자신을 비추지 말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 다잡아 살라는 의미’의 ‘무감어수 감어인’은 내 글쓰기의 기초 철학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늘 이 책과 그를 자랑한다. 지금껏 수십 권을 선물했다. 누군가 이 책을 통해 고마움을 알고 행복을 알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게 되길 그저 기다려 본다.
좋은 서점에서 좋은 책을 사는 일만큼 좋은 기부는 없다고 하였다. 조금은 어려운 책을 읽기를 권하는 마음이 된다. 자전거를 배울 때 심정으로 말이다. 그리하여 책이 만든 사람이 되어 봄이 어떨까 하는 마음을 가졌다. 최근에 호주에서 수년간 임종 직전 환자들을 보살폈던 간호사 브로니 웨어는 가쁜 숨을 내뱉으며 일생을 뒤돌아봤을 때 가장 후회되는 것을 보고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라는 책을 펴냈다. 그 다섯 가지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첫째-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삶 산 것, 둘째-너무 일만 열심히 한 것, 셋째-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 것, 넷째-친구를 잘 챙기지 못한 것, 다섯째-현실에 만족하고 산 것이다. 여기에 필자는 하나를 더하여 본다. ‘평생을 함께 할 책 한 권 갖지 못한 것.’ 데카르트는 좋은 책 읽는 것은 과거의 가장 뛰어난 사람과 만나는 것과 같다 하지 않았는가. 함께 한 이들에게 이 구절을 전하는 것으로 강의를 갈무리 하였다.
떠나가는 가을을 붙잡고 싶은 마음에 노란 은행잎을 떠올려 본다. 다음 만남 장소인 충렬사에서는 아마도 샛노란 은행잎을 알알이 보게 되리라. 다음 만남을 기다린다.
< 사진 제공: 다음카페 함께가는 답사 길따라 >